7년째 연애 중.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날부터 7년을 만났다. 연애만 7년이지 알고 지낸 기간까지 합하면 10년도 넘었을 거다. 고등학교 3년 내내 같은 반 이었던 데다가 수학여행이다 뭐다 암튼 어디 가서 자고 오는 것만 있으면 늘 같은 방을 썼다. 서로의 맨 몸을 보는 것쯤이야 일도 아니었으니 사귀고 나서 관계를 맺는 게 어렵지는 않더라. 사실대로 말하자면 친구였을 때 대딸을 했던 게 도움이 컸던 것도 있다. 그걸 어떻게 시작했지 생각하면 끝도 없다. 이랬는데 저랬고 저랬기에 이랬던 거고 결론은 하고 싶으니까. 하고 싶었다는 감정이 서로가 좋아서 생긴 감정인지는 모르겠다. 그렇게 시작하자 한 번이 어렵지 두 번, 세 번은 쉬웠다. ‘우리 사귈래?’ 한솔이 무드 없게 말했던 고백도 서로의 사정을 도와 준 뒤, 침대 위에 누워있을 때 했을 정도였으니 말 다 했다. 첫 관계는 친구에서 애인으로 이름이 바뀐 지 한 달도 안 지나서였다. 맨몸까지 봤고 서로의 것을 만져주기 까지 한 이상 달아오른 몸을 굳이 숨길 이유는 없었다. 자연스럽게 하게 됐고 이후 만나면 가는 곳이 모텔 혹은 서로의 자취방이었다. 어린 나이에는 그게 사랑을 하는 방법인 줄 알았고 사랑하는 방법이 그것밖에 없는 줄로만 알았다. 그리고 그것이 둘 나름대로의 연애방식이었다. 연인들은 다 이러겠지 사귀면 당연한 거 아니야?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벌써 7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한솔의 제안으로 동거를 시작한 둘은 예전과 다름없었다.
둘만의 평범한 날들을 보내던 어느 날, 승관이 아주 오랜만에 대학친구를 만났다.
“애인이랑은 아직도 잘 만나냐?”
한솔과 대학이 다른 승관은 대학 친구들에게 애인만 있다고 했지 남자친구가 있다고 하거나 한솔을 소개하거나 하지 않았다. 자신은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한솔이 곤란할까봐 그러지 않았다. 그래서 친구들은 아직까지도 승관의 애인이 누군지는 커녕 살아있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잘 만나지”
여기서 대화가 끝이 날 줄 알았다. 그런데 술이 조금 들어가자 첫 경험에 대해서 이야기가 나왔다. 자연스레 7째 연애중인 승관에게 친구가 물음을 던졌다.
“7년 동안 안 해봤으면 고자인 거고”
“야! 해봤거든?”
“사귀고 언제 처음 해봤냐?”
“한..... 한 달 쯤 됐을 때?”
남들에게 이런 얘기를 할 생각도 당연히 없었고 처음 하는 거라 민망해진 승관이 앞에 놓인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키는데 친구는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한다.
“부승관. 내가 친구 놈들 연애 뭐 그런 거 캐묻는 성격 아닌 거 알지. 근데 내가 진짜 딱 하나만 묻자”
“그런 성격 아니면 묻지 마”
“너 그... 한 달에 몇 번이나 하냐?”
“야!!”
이런 질문조차 처음 받는 승관은 앞에 있는 강냉이를 친구에게 던졌지만 친구는 정말 궁금하다는 얼굴로 물어본다. 승관이 입을 꾹 다물고 휴지만 북북 찢는데 말하지 않는다면 끝까지 물어볼 것 같아서 결국 우물쭈물 입을 열었다.
“그걸 언제 다 세냐......”
“이 미친... 그럼 7년 동안,”
“이제 그만 물어. 사귀는 사이에 그거 하는 게 뭐가 어떻다고 그래?”
맥주잔을 들었다가 옆에 있는 얼음물을 마시는 승관을 어이없게 쳐다본 친구가 고개를 젓더니 한숨 섞인 말을 내뱉는다.
“처음에는 좋아서 했는데 지금은 안 하면 어색해서 하는 거 아니고?”
승관은 의외의 부분에서 대답을 못했다. 처음에는 좋아서 했다고... 글쎄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안 나는 건지 좋아서 했던 게 맞는 건지 잘 모르겠다. 그러다보니 한솔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의문점이 생기는 승관이다. 내가 한솔이가 좋아서 사귀는 건가. 지금은 좋아한다는 것 보단 없으면 허전해서 만나는 게 더 컸다. 한솔이가 고백을 했을 때의 내 기분은 어땠더라. 그것도 모르겠다. 대답을 못하는 승관에게 친구가 다른 물음을 던졌다.
“이런 말 하면 기분 나쁠 수도 있는데... 잠자리 때문에 만나는 건 아니지...?”
승관은 역시나 대답하지 못했다. 잠자리 그러니까 섹스 그거 하나 때문에 만난다고.
친구를 만난게 일주일 전인데 승관은 일주일동안 그 말만 신경 썼다. 일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한솔과의 침대 위에서도 집중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 말이 귓속에서 울려 금방 관계를 끝내버리곤 했다. 요즘 많이 하는 생각은 내가 한솔에게 고백을 받았을 때 어땠지 이었다. ‘우리 사귈래?’ 이 말을 듣고 고개만 끄덕였었다. 한솔과 승관이 사귀는 것을 아는 친구들에게 연락이 왔었다. 아직도 사귀냐고. 우리가 어쩌다 이렇게 오래 만나게 된 걸까. 아마 모든 일에 처음이 서로여서가 아닐까. 따지고 보면 섹스를 하는 것만 달라졌지 친구사이나 다름없다.
‘너희는 꼭 친구 같다. 사귀는 거 맞아?’
사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들었던 말이다. 그리고 최근에 만났을 적에도 똑같은 말을 했었다. 친구. 그 단어가 우리 사이에 더 어울릴 것 같다고 승관은 생각했다.
야근 때문에 밤늦게 집에 들어온 승관이 방문을 열자 침대 헤드에 기대어 책을 읽고 있는 한솔이 보였다. 갈아입을 옷을 챙겨들어 화장실로 가려는 승관에게 한솔이 눈은 책에 고정시킨 채로 말을 꺼냈다.
“같이 씻을까?”
“너 씻었잖아”
둘이 말은 하지 않고 잠자리를 갖는 신호가 있다. 이렇게 같이 씻자는 말이 그 신호이다. 승관이 방 문고리를 잡았다가 고민하더니 몸을 돌려 한솔을 바라봤다. 어느새 한솔은 책을 내려놓고 승관을 보고 있었다. 한 번도 승관이 거절한 적은 없었는데. 의외였다.
“승관아. 무슨 일 있어?”
“아니. 없는데”
“근데 왜... 아니다 씻고 나와”
다시 책을 읽는 한솔에게 승관이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한솔아. 너는 나 왜 만나?”
한솔이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승관을 쳐다봤다. 얘기를 꺼내자 아까보다는 머릿속이 편안해진 승관이었다.
“무슨 말인데”
“궁금해서. 우리가 왜 만나는 걸까”
“좋아서 만나는 거지.”
“......내가 좋은 거야? 아니면, 나랑 하는 섹스가 좋은 거야?”
이건 승관이 자신에게 묻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7년이나 시간이 흘렀지만 이제라도 바로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서로가 좋다면 유지를 해야겠지만 아니라면 끝내야한다.
“난 사실 잘 모르겠거든. 내 감정도.”
옷을 잡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어쩐지 끝이 보이는 기분에 마음이 가라앉는다.
“나 씻고 나올게”
“부승관.”
7년을 만났다. 그 기간 동안 좋아했던 적은 있었는지 좋아서 만난 건지 그건 잘 모르겠다. 그런데 연애기간이 길수록 서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무슨 말을 꺼낼지 미리 예상할 수가 있다. 지금 한솔은,
“그래서 어떻게 하자는 건데?”
마지막을 자신이 끝내고 싶지 않을 거다. 친한 고등학교 친구들은 둘의 연애를 다 알고 있다. 7년이나 만나냐고 징그럽다고 일주일 전에도 연락을 주고받았었다. 한솔은 친구들도 알고 있는 둘의 사이를 먼저 끝내고 싶지는 않았다.
“한솔아. 우리 이제,”
겨우 오랜만에 만난 친구 한 명 때문에 이러는 게 우스웠다. 그런데, 계속 이렇게 지내다가는 나중에 정말 우스워질까봐
“친구 할까.”
그만 하려고 한다.
그 날 그렇게 헤어졌다. 승관이 아침 일찍부터 짐을 챙겨 본가로 갔고 한솔은 승관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연락이 없는 한솔에게 굳이 문자 한 통을 남긴다거나 새벽에 전화를 하지 않았다. 초반 한 달에는 버릇처럼 생각이 났었다. 옷을 사러 가서 같은 옷 두 벌을 구매하려고 했었고 장을 볼 때 서로 좋아하는 반찬을 바구니에 담기도 했었다. 그 시간만 지나니 괜찮아졌다.
3개월 쯤 지났을 때 한솔이 승관에게 전화를 해 술에 취한 목소리로 이름만 불렀다.
-승관아
-응
-부승관
-왜, 최한솔
30분이 넘도록 조용했지만 전화를 끊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그러다 승관이 먼저 입을 열었다.
-한솔아.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한솔이 어느새 잠에 들어서 대답은 듣지 못했다. 이후 둘은 아주 가끔씩 친구들에게 안부만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7년이 이렇게 쉽게 끝난 다는 게 조금은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눈 깜빡 할 사이에 1년이 지나갔다. 7년의 연애를 끝냈던 겨울도, 그 다음에 바로 찾아왔던 봄도, 소개팅을 했던 가을도, 다시 돌아온 겨울까지. 어떻게 지냈냐고 묻는다면 나름 살만했다고 대답하겠다. 서로가 없어도 죽을 정도는 아니었고 서로가 아니어도 다른 사람과의 잠자리는 괜찮았다.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쳤을 때에도 각자 옆에 있는 다른 사람을 봤을 때에도 아무렇지 않았다. 헤어지고 나서 정말 좋아하는 새 애인이 생기고 알 수 있었다. 서로를 그렇게 많이 좋아했던 건 아니었으며 정말 섹스 하나 때문에 헤어지지 못하고 있던 거였다고. 스무 살. 철이 없던 나이에 시작한 연애는 성숙해지고 나서야 끝낼 수 있었다. 한솔에게는 새 남자친구가 생겼고 승관은 내년 봄에 결혼을 한다.
7년째 연애 중. 그리고, 이별.